The Roh Tae-Woo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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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가는 대통령 리더십: 남남갈등을 넘어 남북통일로
작가 소개: 백태현 전 통일비서관
약력
- 서울대 법대 졸업
- 美 ‘Minnesota Law School’ 석사(LL.M.)
-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박사
- 美 ‘UC Berkeley School of Law’ Visiting Scholar
- 美 ‘Stimson Center’ Visiting Fellow
-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자문연구위원
- 홍조근정훈장
경력
- 행정고시 35회
- 주독일대사관 통일주재관
-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 이명박 정부 청와대 행정관
- 박근혜 정부 청와대 선임행정관
- 통일부 대변인, 정세분석국장, 교류협력국장
-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교류협력실장
-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통일비서관
더 큰 대한민국, 통일 한반도를 꿈꾸며 이 책을 발간한다
목차
들어가며
제1장 통일과 대통령 리더십
1-1. 대한민국에서 통일문제란?
1-2. 통일과 대통령 리더십의 역할
1-3. 대한민국 헌법상 통일 관련 대통령의 책무
요약 통일과 대통령 리더십
제2장 시민사회와 대통령의 국민소통 리더십
2-1. 시민사회와의 통일논의 소통 원칙
2-2. 시민사회의 통일운동
2-3. 남북학생회담 이슈 관련 논의
2-4. 통일논의 개방과 정부의 대북접촉창구 일원화
2-5.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
2-6. 통일방안 관련 시민사회 의견 수렴
2-7. ‘한민족공동체’ 및 ‘남북연합’ 개념 정립
2-8. 공청회 통한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2-9. 국민적 합의사항을 반영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요약 대통령의 국민소통 리더십 역할
제3장 여야 합의와 대통령의 정치협상 리더십
3-1. 여소야대 국회와 초당적 협력 의의
3-2. 노태우 대통령의 5자회담 통한 여야 지도자 간 신뢰 제고
3-3. 야당 통일방안과의 공감대 형성
3-4. 국회 통일정책특별위원회 활동 통한 초당적 협력
3-5. 정부·여당 내 강경 보수 세력 제압 및 협력 도출
3-6.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관련 4당 간 입장 조율과 공청회
3-7. 여야 합의로 채택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요약 대통령의 정치협상 리더십 역할
제4장 통일정책과 대통령의 의제설정 리더십
4-1. 노태우 대통령의 통일 국정철학
4-2. 통일정책 대전환 ‘7.7 선언’
4-3. ‘7.7 선언’ 후속 조치
4-4. ‘한반도 화해와 통일’ 제하 유엔총회연설
4-5. 북한의 대남전략 및 전향적 대응
4-6. 남북정상회담 추진
4-7. 1988~1989년 남북 간 대화
4-8.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성안 과정 및 발표
요약 대통령의 의제설정 리더십 역할
마치며
부록1 |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48∼’88)의 통일정책 관련 리더십 비교
부록2 | 제13대 대통령 선거(’87) 과정에서 통일논의
참고문헌·자료
책 속으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 그리고 대한교육연합회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의 입장도 정부과 정치권의 입장과 크게 차이가 없었고 학생들에게 자제를 요청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한 여론조사도 전대협을 비롯한 운동권 학생들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응답자의 3.8%만이 지지’하는 등 국민 여론도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런 상황에서 약 2만 명의 대학생들이 1988년 6월 10일 연세대학교 교정에 집결하여 판문점 출발을 시도했고 정부는 경찰력으로 그 시도를 막았다. 전대협의 회원들은 그다음 날인 6월 11일 정부종합청사에 화염병을 들고 난입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전대협의 폭력적 대응에 대해 국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운동권의 ‘반외세·민중주체통일운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이홍구 국토통일원장관을 통해 1988년 7월 5일부터 방송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대북 비난을 중단한다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발표하였다.
- 51쪽
민주화 진척의 정도가 통일 달성 정도의 척도가 된다는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바로 통일논의와 운동의 주체는 명백히 일반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분단으로 말미암은 갖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더욱 바라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이 주체가 될 수 있는 민주제도를 확립할 때 비로소 통일도 앞당겨질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참된 민주주의만이 분단된 조국을 진정으로 하나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된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체제에 놓여 있는 남북한 간에도 정치적인 민주주의와 경제적인 민주주의가 동시에 진전될 때 민족적 동질성이 형성되고 그만큼 통일이 앞당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참된 민주화 노력은 통일의 성취에 기여하는 것이 되고 통일의 완성은 곧 민주화의 완성이 되기도 한다. 평화는 소극적인 것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이며, 좀 더 적극적 능동적 의미에서 7.7 선언에서 하려는 그런 의미에서 평화라기보다는 화해라는 이름을 쓴 것이다.
- 131쪽
당시 국내 언론은 노태우 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관련 발표내용을 “「통일민주공화국」 방안”(동아일보),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의 명암”(국민일보), “통일로 가는 한민족공동체‐새 통일방안의 구도와 의미”(서울신문), “통일에 이르는 단계들”(한국일보) 등으로 보도하였다. ‘북한에 대해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고 먼저 민주화와 개방화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에 대해 주목하였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의지 확인에 의의가 크지만,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은 과제다’ 등의 평가가 있었다. 해외 언론도 AP 통신은 ‘한국 정부 관리들은 노 대통령의 제의는 「정치·군사적 문제해결에 대한 북한 측의 일관된 입장을 긍정적으로 수용」했으며, 과거 한국 제안들의 토대를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Washington Times(1989.9.12)는 ‘(한국의) 새로운 제안은 북한에 대한 두 개의 중요한 양보를 포함하고 있다. 서울은 정치군사적 문제의 논의 이전에 이산가족재회와 교역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철회했다’고 노태우 대통령의 제안 내용을 보도하였다. 미국 국무부도 1989년 9월 11일에 ‘한반도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원대한 방안이며 북한 지도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새로운 통일방안의 제안에 대해 전향적인 통일정책의 변화로 평가하면서 북한이 이에 대해 호응해 올 것을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 211쪽